폭행의 가해자와 피해자, 그들 모두 피해자였다

낮에도 이곳은 항상 어두컴컴하다. 오래된 주차장 이곳은 흐릿한 조명에 언제나 컴컴해 무슨일이 일어나도 아무도 눈치 못챌 정도다.

녀석들이 떼지어 둥글게 둘러싸고 몇몇 아이들을 돌아가면서 퍽퍽소리가 나도록 때리고 있었다.

거침없는 욕지거리가 동굴같은 주차장을 쩌렁쩌렁 울리고 있지만 여기에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불량배 녀석들이 또 누군가를 폭행하고 있는 모양이라고 그저 생각하는 듯 싶다.

맞고있는 녀석도 꽤 덩치가 있는 듯 하지만 반항도 못하고 맞고 있었다.

옆에 한 사내가 지나가며 이쪽을 힐끗 돌아보았을 때 맞고있던 한 녀석은 간절한 눈빛으로 사내를 쳐다보았지만 사내는 아무일 없는 듯 외면하고 총총걸음으로 이곳을 지나쳐버렸다.

몇 개월 동안 수없이 불려가 맞던 아이가 기절하면서 사건은 수면위에 올라왔다.

학교를 믿을 수 없었던 아이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경찰서 행을 택했다.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리고 수개월째 맞고 돈뺏기고 갖가지 고통을 받아온 채 괴롭힘을 당해온 아이들은 신고하니 좋냐고 빈정대고 아무일없듯이 학교에서 마주치는 가해자들로 공포감마저 느꼈다.

학교는 교장선생의 명예로운 정년퇴임을 위해 조용히 넘기기를 바랬지만 용기있는 피해 엄마들에 의해 학교가 한바탕 뒤집혀졌다.

결국 최소한 한 학교에서 마주칠 수 없도록 조치한 것으로 끝났다.

요즘 부산여중생 폭행사건이 SNS를 통해 실체가 알려지면서 어린 여중학생의 괴물같은 이야기가 세상을 경악시키고 있다.

"피냄새 좋네" "어차피 살인미수인데 더 때리면 안되냐"며 마치 공포영화의 싸이코패스의 말처럼 어린 학생들의 잔혹한 악행은 여기저기 퍼지면서 전국 곳곳의 10대의 만행이 튀어나오고 있어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이 어떻게 마음놓고 자식을 키울지 너무 무서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갈수록 잔인해지는 아이들의 폭력에 시달리다 투신자살한 학생 등 더이상 아이들의 싸움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수위가 심각해진 오늘날 10대 범죄를 그냥둘 수 없다고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들끓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까지 잔인해지도록 방치한 어른들은 과연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고 가해자가 되고 그저 아무것도 안하고 구경하는 방관자가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심각한 폭행을 그저 애들 싸움이라 별거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이는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 군대가면 다 맞고 그런다. 맷집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던 남자 어른도 있었다.

그래서 군대에 가서 괴롭힘을 당하다가 자살하는 사건이 나도 그를 이겨내지 못한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려는 이들도 있다.

피투성이가 되도록 때려놓고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가해자, 현장에서 같이 때려놓고 모르는척 구경꾼으로 행세한 가해자,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고 같이 때려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속에 어설픈 가해자가 돼버리는 경우도 있다.

길거리에서 가해자들에게 질질 끌려가도 어른들은 이를 제지하거나 신고한 사람이 없었다.

피투성이가 된 피해자가 택시를 타고 직접 경찰서에 신고해야 되는 시대가 되었다.

또 신고해도 경찰이 별 신경을 안쓰고 허송세월하다 보복폭행이 이어지고 솜방망이 처벌에 타들어가는 피해자의 언니가 SNS를 통해 알려 수사를 재개하는 경찰들, 이제 누구도 아이들을 지켜주지 않는다.

수개월동안 폭력을 당했던 한 아이는 주차장에서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간절한 싸인을 보내도 '모르는척 지나갔다'고 절박했던 당시의 순간을 떠올리며 울먹거린다. 학교는 명예가 실추될까봐 쉬쉬하며 최대한 축소한다. 경찰도 축소할 수 있는한 최대한 축소한다. 이러는사이 벌건 대낮에도 어른들이 보든 안보든 그냥 폭행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사건이 불거지면 대서특필 큰일이 난 듯 떠든다.

그러다가 가해학생의 말처럼 조금지나면 "상관없음, 어차피 다 흘러가 나중에 다 묻혀~"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이다.

법이 솜방망이어서일까. 학교가 입시에 올인하며 문제를 문제로 부각시키기 꺼리고 어른들이 귀챦은 사건에 휘말리기 싫어 신고마저도 꺼리는 사이 우리아이들은 제대로 숨도 쉴 수 없는 세상에 내팽개쳐져 버린다.

우리 시대의 착한 사마리아인은 없는걸까. 강도를 만나 죽을 위기에 처한 유대인을 구한 것은 고귀한 신분인 제사장도 아니었다.

성전을 관리하는 레위인도 아니였다.

오히려 동족이 아닌 유대인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반대편의 사마리아인이었다.

더불어 사는 이 세상 나만 잘 살겠다고 나만 무사하겠다고 주위의 곤경에 처한 이들을 외면할 때 불행은 시작되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위험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는 이들을 법으로 강제하려는 법까지 만들겠다고 나오느냐는 것이다.

도덕으로 안되니 법으로 도덕을 강제하려는 웃을 수도 없는 일이 현실이 되고 있다.

아이들은 어른같은 분들을 더이상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애초부터 참견을 안하고 방관만 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브레이크 없는 악행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잔인해져 어른들의 그것을 능가하고 있는 모양새다.

법을 아무리 강화해도 죄를 짓는 사람은 나온다.

법망이 아무리 촘촘하다 하더라도 그 사이를 빠져나가려는 인간의 지혜(?)는 더욱 발달할 수밖에 없다.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공범자인 소녀는 이제와서 아빠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에 픽 비웃음으로 응수했다.

관심을 갖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어른들이 무관심하고 모르는채 외면하는 사이 아이들이 괴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남의 일 오늘은 내 일이 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사회연대의 힘, 남에 대한 배려, 이웃에 대한 관심이 우리의 미래를 더욱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는 기본적인 상식을 우리 스스로 체화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남을 위해 불을 밝히면 내 앞이 먼저 밝아지는 법이다.

지금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것,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내가 눈감고 방관하는사이 악은 더욱더 번성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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