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으로 물든 10월의 가을 들녘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린 시절 '아버지의 쌀자루'와 관련한 기억 한 토막이 떠오른다. 1977년, 평창에 있는 고향집을 떠나 강릉에서 중학교를 다닐 무렵, 나는 학교 인근에 방을 얻어 할머님과 같이 자취를 하고 있었다. 당시는 학교에서 축구선수 생활을 할 때라 기숙사에서 이루어지는 합숙기간 이외에는 할머님과 같이 생활을 하며 학교를 다녔었다. 아버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기에 가을 추수가 끝나면 어김없이 손수 재배하신 쌀을 한 포대 둘러메고는 읍내 터미널까지 나가 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올라오곤 하셨다.

강릉터미널에서 내가 살던 입암동까지는 택시로도 1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지만 쌀자루를 어깨에 둘러메고 힘들게 남대천 다리를 걸어오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기만 하다. 당시에는 그런 아버님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힘이 드실까 하는 걱정보다는 '쌀자루를 둘러메고 힘들게 강릉까지 올라오느니 차라리 쌀을 팔아서 돈으로 부쳐주면 편한데' 하는 철없는 생각을 먼저 했었으니…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오신 아버님에게 쌀이란 모든 힘과 땀과 정성이 가득 담긴 혼과 같은 것인데, 그 시절에는 왜 그런 생각을 하질 못했는지.

쌀이야 아무데서나 쉽게 사 먹을 수도 있겠지만 당신이 직접 땀 흘려 재배하신 곡식을 자식에게 나눠 먹이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한, 단순하고 철없는 생각이란 걸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깨달을 수가 있었다.

더구나 당시만 해도 집안이 워낙 어렵던 시절이라 등록금을 낼 때마다 아버님은 아침부터 이웃집에 돈을 빌리러 다니셨다는 걸 훗날 초등학교 때 담임을 맡으셨던 은사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버님은 어렸을 때부터 "농사를 배우면 아버지처럼 평생 농사꾼밖에 되지 않는다." "농사는 아예 배우지도 말아라." 라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곤 하셨다. 그래서 나는 시골에서 자랐어도 농사일을 제대로 배우질 못하고 컸던 것 같다. 거기다 삼형제가 모두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축구 유학까지 했었으니 당시의 집안 형편으로 볼 때 아버님으로서는 쉽지 않은 결단과 후원이 아니었나 싶다.

결국 아버님의 바람과는 달리 약속이나 한 듯 형제들 모두 중도에 축구선수의 길을 포기하고 말았으니, 당시 아버님께서 느끼셨을 실망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셨으리라. 결과적으로 우리 삼형제는 이런저런 이유로 그 길에서 모두 중도하차 하고 말았다. 지금은 큰 형님은 교육공무원으로, 둘째 형님은 오랜 공무원 생활을 접고 사업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나마 시골 마을을 떠나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도시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눈을 뜨게 해주신 아버님 덕분에, 나름대로 사회인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비록 아버님이 바라는 대로 축구선수의 꿈을 이룬 자식은 하나도 없지만, 그 시절 아버님의 전폭적인 후원과 사랑 덕분에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부모님 은혜를 뼈저리게 절감한다.

강릉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그 시절에는 철없는 생각에 쌀자루를 메고 올라오신 아버님이 못마땅하여 선뜻 앞에 나서지도 못했지만, 지금 만일 그 상황이 다시 돌아온다면, 감사한 마음에 얼른 달려나가 쌀자루를 받아들고 내 어깨에 둘러메고 왔을 텐데…. 강릉 남대천 다리를 걸어오시는 아버님 모습을 보고도 먼발치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던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만 같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옛말처럼 지금은 저 혼자 자란 것처럼 이렇게 살고 있지만, 사실은 모두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과 정성 덕분에 오늘의 내가 존재하는 게 아니겠는가. 세월이 많이 흘러 어느새 두 아이의 부모가 되고 보니 그 시절 아버님에 대한 은혜를 새삼 더 절실히 느끼곤 한다.

이젠 아버님께 받은 큰 사랑을 자식들에게 돌려줘야 할 세월 위에 서 있다. 좋은 부모가 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요즈음, 내가 서 있는 아버지의 자리가 힘이 들 때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베풀어주신 사랑의 마음을 다시금 되새겨보곤 한다.

(칼럼위원 / 전성규 대한상공회의소 경기인력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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