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하셨나요? 한겨울 나실 준비하시느라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이웃에 나눠줄 만큼 여유롭게 김장하고 연탄 넉넉히 들여놓으면서 뿌듯해하시던 어르신들의 소박함을 사랑합니다.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주위를 맴돌다가 얻어먹는 배추속 쌈은 얼마나 맛있던지요. 배추 양념 속은 다음 해 봄까지 도시락 반찬으로 그만한 게 없었습니다. 땅속에 묻어놓은 항아리 속의 김장이 맛있게 익어가듯 마음도 따라서 한 살씩 멋있게 익어갔습니다.

바로 무쳐서 먹는 겉절이의 상큼한 맛은 그때뿐이어서 금세 잊혀지지만 겨울내내 먹을 수 있는 김치의 맛은 오래 기억되더군요. 겉절이의 맛은 양념이 맛의 바람을 잡아서인지 감칠맛은 있으나 먹고 나면 그 감동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쉽게 분리되는 얕은맛에 속는 것은 아직도 여전합니다. 잘 숙성된 김치의 깊은 맛과는 비교가 될 수가 없지요.

몇 년 전에 처음으로 맛을 보았던 묵은지는 또 다른 감동을 주더군요. 쉰김치가 묵은지라고 알고 있었던 초라한 상식을 나무라듯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3년간 땅속에서 숙성되어 푹 익은 김장김치가 묵은지라더군요. 배추 양념도 소박하게 한답니다. 겉절이가 훌륭하게 꾸며낸 거짓 같다면 묵은지는 어설프지만 확고한 진실 같아서 좋았습니다. 오랜 것이면서 새로운 것이 진리라더니 묵은지에서 또 다른 각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라도 임금도 백성을 위하여 존재해야 한다는 민본정치의 주창자였던 조선 개국의 공신 '정도전'도 34살 때부터 36살 때까지의 3년 동안 나주에서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는 겉절이 같은 관료였던 그였습니다. 고려말의 대표적인 모리배 '이인임'에게 대들다가 미움을 받게 되어 좌천되었지요. 그의 민본사상은 그때 마주한 백성들의 처절한 삶과 더불어 숙성되었습니다. 묵은지가 땅속에서 3년을 익어가듯이 밑바닥의 현장에서 3년을 지내면서 바르게 보고 옳게 듣다보니 헛똑똑이 신세를 벗어나서 참지혜를 얻게 된 것이지요. 아직도 그의 사상은 지극히 유효합니다.

옛날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에게 읽으라고 했던 소학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뒤돌아볼 때마다 어른이 된다.'라고 했습니다.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뜻이지요. 짧게 잡아 3년 전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고 지금은 어떠한지를 되돌아보면 아차 싶을 때가 많습니다. 혹시 묵은지인 것처럼 맛을 속이는 쉰 겉절이는 아닌지?

김장철을 맞아 세상을 돌아보니 참 어수선하고 냉랭하여 마음이 어둡습니다. 척하며 간보기가 일상이 된 듯하여 안타깝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색즉시공이라 고쳐 생각하고 공즉시색이라 다시 시작하자.'고 합니다. '곤경이 도를 낳는다.'라고도 하였으니 자기연민에 빠져 흐트러지지 말고 수행에 더욱 정진하여야 하겠습니다. 더 묵혀 놓다 보면 그 맛이 더할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묵은지처럼 깔끔한 당신을 사랑합니다.

(칼럼위원 김두현 원장(김두현치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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