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때와 같은 마음'이 도(道)라고 한다. 지금같은 특별한 때에 평상심을 갖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에 따라 전 세계의 여러 나라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그놈과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매일 방송과 인터넷에서 그날의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를 발표하며 상황을 알려주니 외면할 수도 없는 지경이다. 자고 일어나서 기침이나 열이 없으면 '오늘도 무사히~' 한다.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받아들이기에 불편하기는 하지만 일찍이 서울대병원 최평균 교수나 하버드 감염교실, 미국 감염학회 등은 인구 40% 정도가 감염될 것으로 예측하였다. 한참 뒤인 3월 11일에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세계인구의 60% 정도가 감염될 것이라고 했다. 백신이 나오고 접종이 끝나가는 시점인 올해 12월까지는 이 바이러스랑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재유입될 것까지를 고려하면 맞는 말인 것 같기는 한데 아니면 좋겠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저서 '총 균 쇠'에서 "전쟁 중에 총에 맞아 죽는 경우보다도 세균에 의해 전염되어 죽는 경우가 많다"라고 하면서 "세균도 기본적으로는 다른 생명체와 똑같이 진화한다. 진화의 과정은 가장 효과적으로 새끼를 낳아 그들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장소에 전파시킬 수 있는 개체들을 선택한다. 잘 전파되는 세균일수록 더 많은 새끼를 남길 수 있으며 결국 자연선택에서도 유리해진다. 인간의 질병에서 비롯되는 기침이나 재채기같은 증상들은 세균들이 인간의 몸이나 행동을 통하여 세균이 전파되기에 알맞도록 개조시키는 과정이 밖으로 드러난 것일 때가 많다."고 하였다. (마스크는 나로부터 타인을 보호하는 것이다.)
1947년에 출간된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 다시 읽기가 또 다른 유행이 되었다고 한다. 흑사병 확산으로 봉쇄된 도시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내용이 지금의 상황과 매우 흡사해서인가 보다. 1347년부터 1351년 사이의 약 3년 동안 2천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낸 흑사병도 중국에서 시작되어 이탈리아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소설 속에서는 의사의 페스트 소견을 공무원들이 두려움 때문에 현실을 외면하여 초기대응에 실패하고, 시민들은 신이 내리는 벌이라거나 부패한 공기 때문이라고 하는 소문에 기도와 금식, 방향제, 양질의 술, 레인코트 등에 의존하려고도 한다.
정확한 정보 없이 자유가 제한되고 감염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고통에 맞서야 할 때 근거없는 소문에라도 매달려 희망을 가져보려 애쓰는 모습이 지금과 다르지 않다. '따뜻한 물을 마시면 바이러스가 죽는다.' '생마늘이 코로나 폐렴치료에 좋다.' '양파즙을 먹으면 걸리지 않는다.' (마음약한 나도 속는 셈치고 따라 해봤다가 창피만 당했다.)
마스크 매점매석, 판매사기, 가짜뉴스로 클릭을 유도하여 이익을 취하기, 확진자를 사칭하여 자영업자를 협박하는 등 혼란 속에서 이득을 보려고 하는 못된 놈들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소설 속의 '타루'라는 인물처럼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극복해 나가려는 성실한 사람들도 있다.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더욱 피곤한 일입니다."라고 한 '타루'의 이 말이 어쩌면 "자신이 감염되는 것보다도 확진환자가 되어 주변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을 더욱 두려워한다."는 이번의 설문조사 결과와 닮아있기도 하고 내 마음 같기도 하여 더욱 와닿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마음의 감염이 더욱 무서운 법이다.(하도 문질러서 손목 위가 찢어져서 피가 나기도 했다.)
감염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를 넘어서 타인을 혐오하고 희생양을 찾아서 비난하는 행위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그보다는 무엇보다도 먼저 나부터가 방심하지 않기가 중요하다. 손 씻기, 몸 청결하게 하기 등의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 실천 등을 통하여 감염의 가능성을 줄이고 혹시라도 내가 무증상 감염자일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타인에게 전파되지 않도록 마스크 착용 등의 주의를 기울이는 것부터 해야 할 일이다. 둘째로는 언론은 언론대로 사실과 원칙에 충실한 보도를 통하여 정확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셋째로 어쩌면 나 대신에 감염되었을 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공감과 배려를 통해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주고 필요한 도움을 주는 지원군이 되어 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전문가들을 신뢰하고, 그 헌신과 노고에 감사와 격려를 함으로써 이번 경험을 통하여 얻게 될 노하우가 또 다르게 다가올 질병X에 대해 신속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어야 한다. '사스'와 '메르스'의 경험이 이번에 도움이 되고 있듯이, '코로나19'도 예외없이 조만간에 물러날 것이고 그 경험이 우리를 더욱 더 강하게 할 것이다.
균이나 바이러스는 이 시기가 끝난다고 하더라도 모두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가 같은 모습 혹은 또 다른 모습으로 방심하는 틈을 타서 공격해 올 것이다. 산업화와 자연 파괴 등을 통한 기후변화와 같은, 인간 문명의 이기심이 계속되는 한 여러 질병은 더욱 빈번하게 인류를 위협할 것이다. 이번 기회를 빌어서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믿고 싶은 것 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 보아야만 하는 것, 믿어야만 하는 것을 다시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쉬운 일을 조심하여 재난을 피해야 하며, 작은 것을 삼가서 큰 재앙을 멀리해야 한다. 일찍 일을 보고 처리해야 작은 것에서 해치울 수 있다." 약 2500년 전의 '편작'이 우리에게 준 충고이다.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페스트와 싸워서 이기는 일은 각자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입니다." - 소설 페스트에서 의사 '리외'가.
(칼럼위원 김두현 원장(김두현치과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