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누운 환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준다. '긴장되시죠? 걱정하지 마세요. 위내시경은 3분이면 끝납니다. 가끔, 30분 같을 때도 있긴 해요." 환자가 살짝 웃는다. 썰렁해도 농담이 통했으니,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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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 언제였더라?

내시경 하는 일이 직업인 내과 의사도 내시경을 받는 일은 고역이다. 처음 내시경 받던 때가 기억난다. 가늘어 보이던 내시경이 목구멍을 꽉 채워 막는 느낌. 목에 걸린 채 이러다가 숨이 안 쉬어지면 어쩌나 하는 느낌. 입마개(마우스피스)가 혀를 누르면서 밀려오는 구역감. 도대체 언제 끝나려는지, 시간이 정지한 느낌. 30분은 넘게 걸린 것 같은데, 이게 겨우 3분이었다고?

목만 넘기면 된다.

내시경이 위 속으로 들여가려면 목을 통과해야 한다. 무언가 삼킬 때, 꿀꺽 소리가 나는 바로 그곳, 거기서 불편함이 시작된다. 주먹을 꼭 쥐면 손가락이 말려 만들어지는 동그라미처럼, 통로는 있으나 닫힌 곳. 아무리 가느다란 내시경을 사용해도, 막힌 곳이라 밀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곳만 잘 넘기면 팔부 아니, 구부능선을 넘은 것이다.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 기침 한 번 하지 않고, 내시경 검사를 잘 받는 사람도 있다. 반면, 양치질 중에도 토악질하는 사람이 있다. 구역 반사가 강하다고 할까? 이런 분들은 다소 고생이다. 특전대원들 몇 명이 내시경 받으러 온 적이 있는데, 인간병기라는 그들도 내시경의 구토 유발에는 복불복이었다. 못 참는 사람들의 고통은 정신력, 특수훈련, 또는 인격 수련으로도 안 되는, 불가항력이다. 잘 참는, 타고난 사람들은 다행이다. 혹여나 참기 힘들다면 '수면내시경'이라는 방법으로 잘 극복하기를.

위 속도 동안이 있다.

내시경을 통해 속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이는 듯도 하다. 정말 상처가 많구나. 얼마나 아플까. 술, 담배에 너무 시달린 건 아닐까? 물론, 참 깨끗한 표면도 있다. 본인은 별 증상이 없다고 하지만, 내시경 후에 약을 주고 싶은 환자들도 있다. 여기저기 긁히고, 벗겨지고, 색이 변한 것을 보면, 연고라도 발라주고 싶은 심정이다. '급성위점막병변'은 마치 화상을 입은 듯, 타버린 듯, 위 표면이 검게 변하고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속이 썩는다'는 표현이 바로 여기에 맞을 듯하다. 위축성 위염은 피부의 노화와 같다. 세월이 가며,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되듯, 표면의 색이 변한다. 반짝이는 핑크빛에서 윤기 없는 하얀빛으로. 더 진행되면, 점막이 쭈글쭈글 변한다. '장상피화생'이라는 말도 위의 '노화' 과정의 마지막 단계이다. 얼굴로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동안'이 있듯, 위 속이 '동안'인 사람들도 있다. 축하의 말을 꼭 전한다. "위만 보면 30대에요! 비결이 뭔가요?" 반대로, 벌써 '노안'인 듯한 환자들도 있다. 무엇을 먹는지, 어떻게 먹는지가 그 사람을 만든다.

위산은 햇볕이었다.

쓰리고, 화끈거리고, 더부룩하고, 답답한 모든 증상을 위산이 만들 수 있다. 위산의 분포를 확인하는 특수염색이나, 위의 산도를 측정하는 검사도 하지만, 번거롭다. 속이 불편해서 못 살겠다고, 위산을 없애달라는 환자가 있었다. 그러나 위산이 전혀 없으면, 몇몇 영양소는 흡수가 안 되어 다른 병이 생긴다. 비타민B의 한 종류인 코발라민(B12)은 위산이 있어야만 흡수된다. 흔한 철분 결핍과 달리 손발이 붓고 감각이 변하는 특이한 빈혈이 발생한다. 위산은 햇볕과 같다. 없으면 못살지만, 너무 강하면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선글라스나 선크림으로 완전히 피할 수도 없다. 모자라거나 넘쳐도 안 되고 적절함을 유지해야 한다.

공공의 적, 헬리코박터.

헬리코박터라는 균은 위 속에 자리잡아 염증반응을 일으킨다. 만성위염과 위암의 주요 용의자이다. 강산성의 위액 속에서 생명체가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아무도 상상 못 하던, 위 점막에서 헬리코박터라는 세균을 발견한 마셜과 워런은, 노벨상까지 받았다. 헬리코박터균은 위산을 분해하는 효소를 갖고 있어 강산 속에서 살아남는데, 역설적으로 위 내 산도가 떨어지면 생존할 수 없다. 헬리코박터균을 없앨 때는 강한 제산제를 2배 용량으로 퍼붓는다. 위암 환자가 많은 일본에서 수년 전부터 헬리코박터균 치료를 적극적으로 확대하자 위암 발생률이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건 꼭 따라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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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경 검사가 끝났다. 딱 3분 걸렸고, 약 30장의 사진을 남겼다. "힘들죠? 잘 참으셨어요. 저보다 잘하시네요." 이번에도 환자의 어깨를 두드려준다. "깨끗해요. 위 속이 동안입니다. 비결이 뭔가요?" 같이 활짝 웃는다. 2년 뒤에 만납시다. 오늘 힘들었던 건, 그때는 잊기로.

(칼럼위원 이근만 연세믿음내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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