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을 평가 할 때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 사람 참 진국이야"

욕심이 없고 원만하며 듬직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반면 " 그 사람 아주 싸가지가 없어"

이럴 경우 그 사람은 도무지 사리분별 없이 제 잇속만 챙기는 얌체로 들립니다.

조선시대엔 어땠을까요? 크게 양분해서 그 사람이 "군자(君子)인가, 소인(小人)인가"로 따졌습니다.

유교를 신봉했던 나라였던 만큼, 공자의 가르침대로 군자와 소인으로 분류했습니다.

논어(論語)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君子喩於義(군자유어의)

小人喩於利(소인유어리)

"군자는 의(義)에 깨닫고 소인은 이(利)에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이(利)에 밝다"라고도 번역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모름지기 인간은 제 잇속보다 사회정의를 먼저 생각하는 군자가 돼야 한다고 가르쳤지요.

지금 세상은 급변했습니다. 군자, 소인은 사라지고 부자(富者)와 빈자(貧者)가 그 자리에 대체됐습니다.

그 사이에 "중산층"(中産層)이라는 애매모호한 계층이 들어섰습니다. 국민 대다수는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규정한다고 합니다.

고전적 사회학 이론에 따르면 "중산층"은 사유재산을 갖고 있으나 자본가는 아닌, 프롤레타리아 계급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맞서는 다른 견해도 있으며 국가마다 중산층에 대한 견해는 제각각입니다. 따라서 세계 모두가 동의하는 기준은 없는 셈입니다.

얼마 전 TV에서 한 교수가 중산층에 관한 강의를 하는 것을 듣고 놀랐습니다.

한국에선 중산층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는 경우가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① 부채가 없으며 30평 이상의 아파트 소유, ② 월급 5백만 원 이상, ③ 2,000cc 이상의 차량 소유, ④ 예금 잔고 1억 원 이상 보유, ⑤ 1년에 1회 이상 해외여행

글쎄요. 이 중산층 기준이 합당한지는 판단이 잘 서질 않았습니다. 그 교수는 외국의 중산층 기준도 함께 소개했습니다.

먼저 프랑스입니다.

① 외국어를 하나 이상 한다, ②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있다, ③ 손님을 대접할 수 있는 요리 실력이 있다, ④ 사회 불의에 항거하는 모임에 참여한다, ⑤ 봉사활동에 늘 관심을 갖는다

다음은 미국의 중산층 기준입니다.

①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다, ② 사회적 약자를 돕는다, ③ 불법․부정에 항의한다, ④ 정기적으로 사회비평지를 본다, ⑤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 중산층 기준의 출처가 어디인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한편 우리나라 중산층에 대한 인식이 온통 돈과 재물에 쏠려있다는 점이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우리나라 수준과 실력, 저력이 선진 외국에 비해 한참 떨어지고 있다는 자괴감도 들었습니다.

조선시대 "의(義)를 먼저 깨닫는다"는 군자(君子)의 덕목이 프랑스와 미국에서 펄펄 살아있고 한국은 오히려 "이(利)를 먼저 밝힌다"는 소인배(小人輩)의 천박한 인식이 뿌리 깊은 건 아닐까요

지난 번 대선 토론회 때 여러 후보들이 앞다퉈 약속한 것은 일자리, 복지였습니다.

당연한 현안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국민성(國民性)을 고양시키고 국격(國格)을 상승시키자는 말이 누구의 입에서도 나오지 않은 것은 크나큰 유감이었습니다.

육중한 항모(航母)는 현재의 좌표를 찍고 먼 바다 목표를 향하여 천천히 선회합니다.

우리나라가 바로, 현재 좌표가 어디인지를 살피고, 새로운 목표를 향하여 항로를 바로잡아야 할 때라고 봅니다.

(칼럼위원 김승한 전 포항MBC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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