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환자 과연 어떠한 관계이고 어느 정도의 관계여야만 하는 것일까? 15년 의사 생활을 하고 있는 본인에게도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숙제이지만 또 반드시 풀어야 하는 숙제이기도 하다.

최근 인터넷이나 지면을 통하여 수 없이 쏟아지고 있는 의학 지식을 접하는 환자에게는 오히려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이 본인의 주관적인 판단이다. 마치 과외공부에 길들여진 요즈음 학생들의 세태처럼… 지식의 전달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순기능을 하고 있는 이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 단순 지엽적인 지식으로서 모든 증상을 꿰어 맞추려는 우를 범하게 되고 더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담당의사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됨으로써 서로간의 신뢰를 깨게 되는 매개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의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만나기 꺼려지는 환자들이 바로 소위 닥터 쇼핑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미 이들의 눈은 의사들의 말을 제대로 귀 기울여 들으려고 하지 않고 의심에 가득 찬 눈으로 본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꿰어 맞추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의사로서 상실감이 들고 다시는 환자를 보고 싶지 않은 마음마저도 든다. 차라리 의사의 말을 경청하고 난 이후 '사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듯 한데 이것에 대하여서 설명을 해 달라'고 하면 오히려 궁금증을 해소해 주기 위하여 애를 써 볼텐데 누군가와 비교 당한다는 느낌은 썩 유쾌한 기분만은 아닐 것이다. 환자들 사이에서는 ' 아니 자기 자신의 몸을 맡기는 사람을 검증할 필요성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치료의 주체가 되는 의사선생님을 신뢰하지 않고는 정확한 치료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서로의 확신과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의사들은 더더욱 방어 진료에 몰두(?) 할 것이고 이로 인하여 환자들은 제대로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닌 절반의 치료만을 받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신하는 자기를 믿어 주는 주군을 위하여 목숨을 내건다고 하는 옛말이 있듯이 의사들도 자신을 믿어주는 환자를 위하여 최선을 다할 때 의사로서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2년 전 소아마비라는 병으로 인하여 아킬레스 힘줄의 단축으로 계단을 제대로 올라 갈 수 없었던 50대 중반의 환자분에게, 모든 병원에서 손을 댈 수 없다고 하는 그늘진 표정을 보고 호기있게 치료를 약속한 이후 수십 차례의 망설임과 상의 끝에 받은 수술을 통하여 이제는 제대로 계단을 올라 갈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해맑은 표정을 보았을 때 오히려 환자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만약 그 환자분이 나를 다른 의사들 중의 하나라는 생각으로 외면했다면 그러한 기회를 통하여 환자를 치료하고 얻을 수 있었던 즐거움을 느낄 수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어린아이처럼 환자의 관심과 정성을 통하여 성숙해지고 완성되어지는 꿈나무라고도 할 수 있다. 최근 인의보다는 명의를 찾으려고 하는 우리 세태가 결국 성숙된 의사보다는 기술에 의존하고 우쭐거리는 괴물같은 의사들을 키우고 종국에는 사회면에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의사를 보면서 또 의사를 불신하게 되는 악순환을 낳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제 환자들은 의사에게 먼저 본인들의 마음을 열어주어야 의사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또 이것이 결국 환자들 본인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 되고 의사들은 그 보람으로 더욱 훌륭하고 성숙된 의사로 발전해가는 호재의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이제 훌륭한 의사 한번 키워보지 않으시렵니까, 우리 손으로….

【 글 ┃ 마디편한병원 황필성 대표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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