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 방송국의 가요경연 '미스터트롯'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멋진 노래들이 코로나(COVID-19)로 멍든 시민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 매우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세간에 이름이 오르내린 많은 참가자 중 '막걸리 한잔'이란 노래를 부른 가수 영탁의 사연을 듣고 가슴이 뭉클했다. 영탁은 트롯가수가 되기 위해 지원한 것이 아니라 불혹(不惑)의 나이 40을 바라보며 오랜 무명생활을 거친 현역가수였다.

영탁 뿐 아니라 아무도 모르게 무대 뒷전에 있는 가수들이 많을 걸로 생각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안타까운 젊음들도 얼마나 많이 있는가? 여하튼 무명가수에게 TV에 출연할 기회가 생겼다는 건 대학가의 수많은 시간강사에게 전임교원의 자리만큼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 영탁을 비롯한 신인 아닌 신인가수에게 미스터트롯이란 무대 자체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영탁이란 가수는 이미 앨범을 발표했고 발표한 노래 상당수가 자신이 스스로 작곡한 것이라 한다. 무엇을 새로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 노래를 만든다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일 것이다. '니가 왜 여기서 나와!'하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노래도 영탁의 곡이라 한다. 영탁의 말로 자기는 길을 걷다, 차 한잔 하다 또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문득 영감이 떠오를 때 놓치지 않고 메모하는 습관이 있고, 스마트폰 탄생 이후 녹음기능을 이용해 떠오르는 가락 하나하나 자기 목소리로 흥얼흥얼 녹음해 둔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혼자 있는 시간, 흥얼거렸던 가락을 하나씩 꺼내어 검토하고 될 성 싶은 것은 노래로 만들어낸다고 한다. 일부는 자기가 부르고 다른 후배가수에게도 곡을 주는 모양이다. 지금 그의 스마트폰 안에 흥얼거리며 녹음된 파일이 1,000개도 넘는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일할 때나 쉴 때나 종일 음악만 생각하고 주어진 모든 시간을 음악에 투입한다는 사실이다. 속된 말로 우리들이 먹고 사는 방법은 수없이 많다. 교수, 의사, 한의사, 회사원, 군인, 영업사원 등등. 그런데 퇴근 이후 업무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학생을 가르치는 나는, 앉으나 서나 학생만 생각하고 잠들 때까지 강의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데 사실상 그리 못하고 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집안일, 친구일, 가족일 등등 시간을 잡아먹는 요인이 갈수록 많아져 오롯이 내 업무에 전념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내 직업임에도 거기에 몰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영탁이란 가수는 그렇지 않았다. 어느 대학인지 모르나 대학에서 겸임교수를 하며 학생들에게 노래를 가르친 경험도 있고 서울이고 지방이고 행사가 있으면 한걸음에 달려가 노래를 부르며 살았으니 그 삶이 쉬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보통사람같으면 내 신세가 왜 이럴까 나는 언제 집사고 좋은 차를 타며 남들처럼 보란 듯 잘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문득 떠오르는 악상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녹음하고 다시 꺼내 들어보고 오선지에 그리며 노래를 만들어갔다.

입장을 바꾸어 곰곰 생각해보니 먹고 살 만큼 소득이 된다면 그런 일에 매진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십년 이상 그런 생활을 계속 해야 한다면 나같으면 포기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허공 속 메아리로 돌아온다면 보람이 일체 없으니 말이다. 영탁의 이야기를 듣고 나 자신에게 안타깝고 나 자신이 무척 초라해 보이기도 하고 그동안 나에게 강의들은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나를 원망했을 것이란 생각에 자책감이 들기도 했다.

경쟁력이 특별한 것일까? 꼭 머리 뛰어난 사람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 무엇을 만들어야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사명감을 가지고 남이 무어라 하든 내 길을 꾸준하게 걸어갈 때 경쟁력은 생기는 것이라 생각된다. 시원하게 뿜어내는 영탁의 목소리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내고 싶고 그의 노력과 정성이 아름답게 열매맺기 바란다. 그리고 우리 모두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자' 당부드리고 싶다.

(칼럼위원 / 최영한 웅지세무대학교 교수)

저작권자 © 파주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