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 조사관, 발로 뛴다

역학조사관으로 1년 일했다. 2006년도에 내과 전문의가 된 첫 해. 질병관리본부에서 6주간 교육을 받고, 경기도 제2청사 보건위생과에서 근무했다. 공중보건의사 시절이었다. 그 시절 기억이 희미하지만, 역학조사관을 상징하는 마크가 인상적이었다. 두 개의 길쭉한 타원형. '구두'를 상징한다고 했다. 열심히 발로 뛰라는 의미라고 들었다. 지금도 그 마크를 쓰는지, 오랜만에 검색해 보았다.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에서 찾은 역학조사관 마크는 두 개의 구두 모양에서 하나의 구두 형태로 변했다. 나에게는 더욱 선명하고 예쁜 구두 모양인데, 처음 보는 사람들은 알아볼지 궁금하다.

▲2020년도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에서 찾은 역학조사관 마크, 더욱 선명한 구두모양이 보인다.
▲2020년도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에서 찾은 역학조사관 마크, 더욱 선명한 구두모양이 보인다.

역학조사는 발로 뛴다. 직접 가봐야 한다. 인근 지도는 물론 내부 평면도까지 확인하고, 환자도 만나서 묻고, 진찰하고, 설문지도 받는다. 마치 범죄수사 같다고나 할까? 물론, 범인처럼 쉽게 잡히지 않는다. 심증은 있어도 물증이 없는 경우가 많다. 구토, 복통, 발열이 있는 환자의 대변에서 노로바이러스가 나왔으면 범인 이름은 찾은 셈인데, 도대체 무엇을 통해서 노로바이러스가 환자의 입으로 들어갔는지가 미궁이다. 범인의 인적사항은 손에 쥐었는데, 신병확보가 안된 셈이다. 칼, 도마, 행주, 밥, 반찬, 국, 간식, 과일, 정수기 물까지 샅샅이 뒤져도 끝끝내 안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무슨 무슨 균, 또는 바이러스에 의한 장염'이 발생했으나 원인은 미상임. 이런 식으로 역학 보고서를 마무리하곤 했다.

요즈음 코로나바이러스를 추적하는 역학조사관들은 CCTV와 카드사용명세까지 뒤져야 하는 것 같다. 구두가 닳도록 뛰고, 거기다가 눈이 빠지도록 애쓰는 그들에게 경의를 보낸다.

파주에서 메르스를 겪다

2015년도 파주의료원에서 메르스를 겪었다. 파주의료원 내과 과장 시절, 어느 요양원에서 메르스환자가 발생했고, 요양원의 다른 환자들이 '밀접 접촉자'라는 이름으로 후송되어왔다. 파주의료원에 2주간 입원하여 발병 여부를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기존 입원실을 비워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을 때는,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하지만 다음 날, 바로 지금 바로 비우라는 것이다. 경증환자는 서둘러 퇴원시켰고, 중등도 이상의 환자들은 진료의뢰서를 작성하여 근처 병원으로 이송했다. 텅 빈 병동을 쳐다보며, 이게 정말 가능하구나 하고 감탄했다.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일사분란함이라니. '다 계획이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일부터 방호복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명감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레벨D는 방호복 중에서 가장 낮은 단계였다. 가장 낮은 단계인데 뭘! 하고 입었는데, 마스크와 고글로 숨이 막히고 앞이 안보였다. 첫날 병실에서 청진기를 꺼내서 환자 숨소리를 들으려다가 마스크와 고글이 모두 벗겨질 뻔했다. 이후로, 동작 하나하나에 긴장하게 되었다. 회진을 마치고 방호복을 벗고 나면, 온몸이 아팠고, 그 안에 입은 옷은 땀에 젖어서 쥐어짜면 물이 흘렀다.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들은 당시 언론 플레이로 의료진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우리 관내, 어느 아파트에 메르스 병원 간호사가 산다', '어느 초등학교에 메르스 병원 의사의 자녀가 다닌다'... 방호복을 입고 병동에 들어가면서도, 우리 애들이 학교에 가도 되는지를 걱정했다. 외국처럼 '영웅'으로 대접하고, 예우하기는커녕, 병을 옮길지도 모르는 위험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의심받고 따돌림받을까 두렵게 만들었다. 그때, 그 정치인 몇몇은 지금도 용서할 수 없다.

중국의 리원량, 그리고 메르스 35번 환자, 의사 박융석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시작되던 시기에, 위험성을 알렸던 안과의사 리원량. 끝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한 그를 전 세계가 애도했다. 안타깝다.

나는 그를 보며, '메르스 35번 의사'로 불렸던 한국의 '박융석' 선생님이 떠올랐다. 삼성서울병원 외과의사였던 박 선생님은 응급실에서 환자를 돌보던 중에, 아마도 근처에 있던 메르스 환자에게 감염되었다. 이후 증상이 나타나자, 자신을 격리했고, 다행히 아무에게도 전염시키지 않았다. 본인은 입원 후, 지속해서 악화되었고, 30대의 젊은이가 인공호흡기 및 체외순환장치(에크모)까지 사용하는 중증 상태에 빠졌다. 무려 5개월의 사투가 끝나고야 퇴원할 수 있었다. 누구보다 강한 체력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외과 의사'가 직업인 그는, 상당 수준의 폐 기능의 손상과 '외상후스트레스 장애'까지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끝끝내 병마를 이겨내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이후, 그의 소식은 모른다. 나는 박융석 선생님이 건강을 되찾고, 환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그의 의업을 다시 펼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우리 곁에, 우리가 잊은 영웅이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오리무중, 집단면역

2020년, 우리는 코로나 사태를 맞고 있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이 신종 전염병이 대구와 경북을 거쳐 서서히 수도권을 넘어 경기도, 우리 파주까지 넘어오고 있다. 넥타이를 꽉 조인 느낌이다. 이 혼란이 어떻게 끝날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감염병 전문가인 김우주 교수님은 2009년도 '신종플루' 대유행 이후에 "...플루는 방역을 잘한다고 해서 걸리지 않는 게 아니다. 개인 대 개인의 감염에서는 인구의 일정 수준, 즉 역치까지 감염되어야 멈춘다…."는 말씀을 남겼다. 아마도 상당수가 감염된 후, 다시 말해 '집단면역'이 획득된 이후에나 멈추지 않을까. 아니 끝없이, 앞으로 상당 기간 우리와 공존할지도 모른다.

역학 조사관 교육을 받던 시절 교재들은 어디 있는지 못 찾겠다. 그러나 '감염원 차단'은 방역의 기본이다. 초기에 해외에서의 유입을 막았더라면. 지금의 이 재앙은 결단코 없다. 아직도 온갖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

큰 아이가 올해 중학교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처음 맞춘, 겨울 교복을 입어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4월이다. 하복을 입고는 입학식을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지나간 일상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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