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진료실에서 마지막 환자분이 계속 생각난다. 다른 병원에서 골다공증을 진단받고, 주사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3개월에 한 번 주사를 맞는데, 맞고나면 1주일간 몸이 아파 진통제 없이는 버틸 수가 없었다 한다. 골절을 예방하려고 치료를 받는데, 예방하느라 이렇게 아프다니. 그래도 3개월마다 주사를 맞으며, 다음에는 덜 아플거라 기대했건만 계속 아파서 결국 중간에 포기했다 한다. 부작용을 호소해도 "좋아질 거다."라는 말만 계속하던 의료진에게 서운함도 있는 듯 하다. 골다공증 치료는 먹는 약이나 주사제나 까다롭고 부작용도 많다. 물론, 별다른 부작용 없이 쉽고 편하게 치료받는 사람도 있다. 같은 약으로 치료해도 어떤 사람은 잘 치료가 되고 어떤 사람은 부작용으로 고생한다. 치료 효과도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한 잔만 마셔도 가슴이 두근거려 잠도 못 자는 사람이 있다. 카페인을 분해하는 능력이 CYP1A2라는 '유전자 변이'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전자에 의해 카페인 분해가 느린 사람은 카페인 농도가 너무 높게 올라가 부작용이 나타난다. 술 한 잔만으로도 얼굴이 새빨개지는 사람이 있다. 알코올 대사에 관여하는 간의 효소 차이인데, 동양인의 약 30%에서 발견되며, "아시아 홍조(Asian flushing)"라고도 불린다. 이런 유전자의 변이를 가진 사람은 술을 많이 마시게 되면, 식도암 발생률이 보통사람보다 더 올라간다고 한다. 어찌보면, 유전자의 변이들은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전술인지도 모른다.

똑같은 약을 처방해도 어떤 사람은 금세 좋아지는데, 어떤 사람들은 효과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오히려 '머리가 아파요, 어지러워요, 입이 말라요…" 등의 흔치 않은 부작용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의사 초년시절에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호소하는 환자를 만나면 매우 당황하곤 했다. 그리고, 환자가 예민하다거나 특이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또는 내 처방이 적절치 못한 건가 하는 자책감에 괴롭기도 하고, 다른 의사에게 가보시라며 슬그머니 물러서기도 했다.

2003년도에 인간의 유전자지도를 분석하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되었다. 6개 국가, 14년의 세월과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다. 이후 유전자 분석기술이 발전하면서 유전자 분석 속도는 더욱더 빨라지고 비용은 떨어지기 시작하였고, 2017년도에는 1시간만에, 단 100달러의 비용으로 분석이 가능하다는 기업이 등장하였다. 유전자 분석이 너무 쉬워져서 택배로 포장된 튜브에 침을 모아 보내면 어떤 질병에 취약한지 유전자가 분석된 보고서가 돌아오는 세상이 되었다. 오히려, 유전자 분석이 악용되지 않도록 법으로 제한하고 무분별한 유전자 분석을 금지하는 세상이 되었다.

유전자의 분석은 우리가 궁금하던 그 비밀의 답을 알려주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질병에 취약한지, 또는 어떤 사람은 왜 어떤 치료제에 반응이 없는지 등이 분석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태어날 때 모든 것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 동일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도 환경에 따라 유전자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란 경우, 특정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지거나 또는 반대로 어떤 유전자의 스위치가 꺼지는 방식으로 유전자의 변화가 생긴다. 탄 음식, 육식위주의 식사, 폭음, 흡연 등은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의 스위치를 꺼버릴 수 있다. 반대로 건강한 음식, 좋은 환경, 적절한 운동은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의 스위치를 켤 수 있다. 이름하여 '후성 유전학' 이다. 유전자의 구조는 그대로 있지만, 유전자의 기능은 각기 다르게 살아가는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심지어 그 변화는 다음 세대로까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유전자'는 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만이 아니었다.

검진을 받으면서 비타민D 수치를 검사하고, 상담하러 오는 환자분들이 많다. VDR(비타민D 수용체)이라는 비타민D 관련 유전자가 있는데, 이 유전자에 변이가 있으면 혈중 비타민D 수치가 낮고, 골다공증, 대장암, 유방암 등이 더 잘 생긴다고 한다. 피부에서, 간에서, 그리고 신장과 혈관에서 비타민D가 만들어지고 이동하는데 관여하는 여러 유전자의 변이가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 변이들에 의해 비타민D 수치가 변하는 것이다. 나는 왜 비타민D가 많다는 음식을 먹어도 수치가 올라가지 않을까? 나는 왜 햇볕을 많이 받고 운동을 해도 비타민D는 여전히 수치가 낮은 것일까? 어쩌면 비타민D의 수치는 나의 생활습관보다 여러 유전자에 의해 어느 정도 결정될 수 있다. 그러나, '후성유전학'이 말하듯 우리의 노력으로 유전자도 달라질 수 있다.

최근에는, 어떤 약을 처방한 후에 환자에게서 전혀 효과가 없다거나 반대로 부작용으로 너무 고생했다는 말을 들으면 당황하지 않는다.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자세히 물어본다. 다른 부작용은 없던가요? 입이 마르셨나요? 약을 먹자마자 바로 불편하던가요? 설사를 하나요? 얼마나 심하게 하던가요? 약을 중단하면 바로 멎던가요? 배가 아프지는 않던가요? 열이 나지는 않던가요? 구역질은 없던가요? ... 이 환자에게는 그 약이 맞지 않을 무엇이 있을 것이다. 현대의학이 미처 알아내지 못했다고 해서 특이한 환자는 아닐 것이다. 더 자신있게(?) 잘 모르겠지만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어쩌면,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서로 다른 음식을 먹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여러 사람을, 똑같은 약으로 치료하는 것이 넌센스일 수 있다. 의학이 더 발전하고 '근거중심 의학'을 넘어 개인의 '맞춤의학'의 시대로 진일보한다면, 특별한 당신, 특별한 당신의 몸에 맞는, 당신만의 치료가 가능할 것이다.

특별한 당신. 특별히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이 어서 오기를.

(칼럼위원 이근만 연세믿음내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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