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시티는 '유유자적한 도시, 풍요로운 마을'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치타슬로(cittaslow)의 영어식 표현으로, 1986년 패스트푸드(즉석식)에 반대해 시작된 슬로푸드(여유식) 운동의 정신을 삶으로 확대한 개념이다. 전통과 자연 생태를 슬기롭게 보전하면서 느림의 미학을 기반으로 인류의 지속적인 발전과 진화를 추구해 나가는 도시라는 뜻이다. 이 운동은 이탈리아의 소도시 포시타노를 비롯한 4개의 지역에서 시작되었고, 우리나라는 전북 전주, 경남 하동, 경기 남양주, 강원 영월 등 전국에서 15개 지역이 참여하고 있다.

'칼하인츠 가이슬러'는 「시간」이란 책에서 "느림이 우정을 발명했다. 빠름에는 친구가 필요하지 않다. 교통수단이 필요할 뿐" 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현대사회는 속도를 강조하지만 작가는 '느림'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목적 없는 한가함, 나태한 것으로 간주되고 무익하다고 일컬어지는 것들의 유익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실 현대인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 '속도'와 '경쟁'이라는 중압감에 밀려 메마른 현실 속에 일상을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삶이라고 하는 생방송의 무대에서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정작 옳은 길인지, 혹은 제대로 가는 길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등을 떠밀린 채 달려가는 것이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단면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얼마 전 퇴근길에 라디오를 듣다가 스웨덴의 유명 4인조 그룹 '아바'가 부르는 '안단테 안단테'라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가사내용은 제목과는 다르게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라곤 하지만 '안단테' 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느림'의 의미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무실에서나 퇴근을 해서나 하늘 한 번 올려다 볼 여유도 없이 일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안단테'라는 이름은 내 마음을 헐겁게 하는데 꼭 필요한 도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70~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나름대로의 낭만과 여유가 있던 시절이었다. 비록 살기는 어려웠어도 느긋함이 있었고 사람들 사이에 인정이 있었고 인간적인 눈물도 있었다. 적어도 지금처럼 칸막이를 하고 살아가거나 자동차 경주하듯 속도만을 강조하는 각박한 시대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웃과 어울리며 더불어 살았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서로 나눠먹기도 했다. 비록 생활이 불편하고 불합리한 점은 있었지만 그래도 끈끈한 인간미가 있어 좋았었다. 지금은 디지털이라는 편리함과 현대문명이라는 눈부신 발전이 있음에도 정작 우리 내면의 행복은 외관상의 발전과는 무관하게 역주행하는 것만 같아 안타까움을 더하게 된다. 더구나 이러한 문명의 이기로 인해 눈만 뜨면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우리 주변의 온갖 불미스러운 사건들은 마음을 더욱 착잡하게 한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려가듯이 늘 앞을 향해 직진해야만 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속도감에 이끌려 앞만 보고 달려가다 삐걱 넘어지기보다는 좌우도 살펴보고 때로는 유턴도 할 수 있는 여유있는 마음으로 일상을 마주하고 싶다.

빠름만이 가치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곳에서 느림은 경시되기 쉽지만 우리사회는 어찌보면 스피드라고 하는 실적 경쟁 속에 아름다운 심성마저도 '메마름'이라는 전염병을 앓고 있는 건 아닌지 돌이켜 볼 일이다. "속도는 창조력이 될 뿐 아니라 동시에 사회를 파괴하는 폭력이다. 우리사회에 점점 가속도가 붙으면서 세심함, 부드러움, 사려깊음, 생각, 그리고 다른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칼하인츠 가이슬러'의 말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칼럼위원 전성규 경기인력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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